Ab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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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vorite sayings (citations)

I’m still hungry. I love to learn!Rankin
je veux rester toujours comme le petit prince 
 (I always wanna be the little prince of Saint Exupery)
I’d love to be Jonathan Livingstoe Seagall. Fly higher and look further.
-Je ne perds jamais, mais je gagne et j’apprends.
  (I never lose, but gain and learn.)
-I wanna leave the deep trace of my finger scraching on the World Map – Andre Maleaux

[About Studio KAKU, brief history]

국내최초로 studiokaku.com  한류콘텐츠전문기획사 대표 이강국 전 2002 월드컵mbc총연출자가 미국의  오프라 윈프리의 디지틀 출판 방송사업체인 studio Harpo를 모델로 한 Studiokaku를 론칭한다.

1차 사업의 부드러운 도약을 위해 워밍업으로 국내최초의 SnS 방송아카데미와 인문학 아카데미를 하이브랜드 백화점에 개설하고, 이와 동시에 Digital Web casting/ Web magazine, Web gallery, Web News ‘Art & Culture’를 시작한다.

[전례없는 사업이며 전레없는 1인 출판기획이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그가 다름아닌 1998년 1인 비디오저널리즘을 만들어 방송피디연합회의 실험정신상을 수상한 바로 그 사람이고…방송 커리어를 보면 일찌기 파리 유학시절 파리MBC 사무실을 직접 개설하고, 보도국과 호흡을 맞춘 생활을 한  보기 드문 이력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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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귀국하여, 샘터에서 작가 김승옥 선생의 영화 미혼모의 퍼스트 조연출을 잠시 하고, 86년 아기의 우유값을 안정적으로 벌기위해 정채봉 편집장의 제안에 따라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를 번역했다. 또, 서울 MBC에 입사하여, 한국 방송 다큐멘터리 1세대로서 ‘한국문화의 원류를 찾아서’ 조연출을 시작으로 프로듀서 일을 시작했다. 후에 생방송을 전문으로 하게 되는데,  차인태 출발새아침을 시작으로 손석희,허수경의 아침만들기, 한선교,최하정의 열린아침, 조영남의 토요스페셜, 10시 임성훈입니다. 등 수년간 모닝토크쇼와 문화예술쇼를 연출해왔고, 95년엔 직접 이숙영의 수요스페셜에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을 출연시킨바 있다.
그리고 95년 5월부터 8월까지 미국 Soho에서 백남준과 생활하며 70주년 8.15 해방 비디오 아트를 제작하는데 협력하고, “세계 속의 한국인- 백남준의 8월” 을 방송하였다.

‘희망한국 청년강국’으로 해외 800만 동포와 소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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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생명피디’ 로 통하는 그는 지난 1998년 한국의 퓰리처상이라 불리우는 한국방송피디협회의 실험정신상을 수상한 이래 우리 방송계는 모두 1인 미디어인 비디오저널리즘을 시작한 계기가 된 바 있다.
 그의 이번 행보는  ‘희망한국, 청년강국’을 슬로건으로 하여 전세계에 흩어진 800만의 한국교민들과의 문화소통, 언어소통을 시작으로 해외거주 청소년들의 모국방문과 미래발전에 가교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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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다다익선’ -국립현대미술관
 방송과 출판활동을 통한 대 국민 캠페인을 시행하여, 이들을 순차적으로 모국방문캠프에 초대하려는 야심찬 계획도 공개했다.
“기름 한 방울 안나오는 나라에서 미래 한국경제 사회 발전의 초석이 될 청년들에게 올바른 정보와 교육을 미디어 선배로서 제공하고 소통의 기회를 확대하려는 자연스런 바람에서 이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이미 자신이 26세인 1980년 도불하여, 유학생 신분에서 유럽에 첫 한글신문을 1인 기자시스템으로 발행 (서울신문사 편집)한 바 있다.   이후로 81년 파리 MBC 특파원 사무실을 설치하는데 앞장 서서 유학생이자 현지직원으로 통역과 보도취재의 조역역할을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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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Jacque Chirac 파리시장을 만나 인터뷰한 후 사석까지 초대되어 프랑스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최고의 음식과 와인을 마시며 프랑스 파리의 차기 올림픽 유치에 관한 한국의 지원 등 한국언론에 대한 시라크 시장의 바람까지 자연스레 전달한 스토리가 흥미롭다.

21세기형 스토리텔러가 되고자 영화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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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불문과를 4회 졸업한 그는 프랑스 8대학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다.
“외국어를 공부해서 책 한권 제대로 읽으려면 몇년이 걸릴지 몰라요. 그러나 영화관에 앉아 2시간이면 그 정수를 얻습니다. 이렇게 전세계 문학을 영화로 보면 3000편도 30000편도 영화도서관에서 볼 수 있어요. 정치 사회 언어 관습 사진 미술 의상..모든 것을 눈으로 각인시키는데…외국어를 배워 익히는 방법에 비하면 가히 빛 속도라 할 수 있어요.  저는 논문도…이야기’recit’ 구조에 관해 썼을 정도로 이야기를 파고 들었어요. 세상과 소통하려는데…제 능력이 너무 미흡하고 머리도 좋지 않아서…결국 책 한권 두툼한 것…끝까지 사전 뒤지며 읽지도 못하는데…영화관에선 톨스토이의 ‘부활’도 3시간이면 감상이 되는 겁니다. 일종의 다이제스트나 컨닝같은 기분도 들지만…영상시대에 꼭 필요한 속독법(!)으로 영화를 전공하기로 했죠.  영화비가 좀 들었지만 학비가 없는 프랑스라서 버텼어요.

영화전공과 파리 MBC 생활의 병행. 그렇게 5년을 마치고 귀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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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이장호 감독의 영화판을 기웃거리고, 샘터영화사에 조연출로 경험하다 ‘아기의 우유값을 벌자’는 엄기영 특파원의 추천으로  MBC 교양제작국 피디로 특채되었다.
 수년간 토크쇼와 문화예술 생방송, 백남준 다큐멘터리(95), 외에도 87년 AIDS 유럽, 아프리카 특파원, 2001년 아프가니스탄 특파 피디로서 알려져 있으며, 88올림픽을 비롯해서 96년 아틀랜타 올림픽 때 한달여 현지에 상주하여 이수만을 MC로 해서 매일 저녁 ‘여기는 애틀란다!’ 생방송을 지휘했으며, 2002년 한일 월드컵은 MBC총연출로서 시청광장을 오픈시켜서 50만의 붉은악마 광장을 만들어 세계를 깜짝놀라게 한 바 있다.
 이후 지속적인 생명을 테마로 한 ‘생명시리즈’다큐멘터리의 유명세로 서울아산중앙병원 간이식팀이 주축이된 ‘메디TV’ 의료방송을 기획하여 초대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2007년 이후로는 미디어 펌 (media firm)을 기반으로 하는 ‘생명문화미디어소사이어티’를 구축하려는 데 노력하여 최근의 1인 출판미디어 시스템 회사인 SNS 기반의 한류전문미디어기획사 Studiokaku를 2014년 설립하고, 2016년 5월 본격적인 복합미디어방송출판 활동을 론칭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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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S방송인문학의 새 길을 열다

 현재 트위터에 kaku55라는 계정을 두고 이것을 사령탑으로 해서 전세계 언론과 예술가와 화랑과 영화인들 등과 교류하는 그는 WordPress 형태로 2011년 만든 한류영문포털 매거진인 culturemmag.com (현대약품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지난 9월 Web Korea 매거진 부문 최고대상을 수상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뻐했다.
 “요즘은 하루하루 SNS 툴과 용법이 진화하고 있으며, Google, Yahoo 등이 플랫폼 사업에서 새롭게 약진하고 있다” 고 말하는 그는 한국의 미디어인문학 아카데미를 만들 필요성을 역설하며…”한국사회는 가진자와 없는자가 너무 뚜렷하고, 씨니어와 주니어는 직업란에 고통받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씨니어는 경험을 나눠주고, 주니어는 이를 학습하며 멘토쉽을 통해 세대간  신통합의 필요성과…아울러 우물안 개구리 식의 학습방법에서 탈피하여, 지구촌 전문가들과의 SNS소통을 통한 적극적인 자기학습과 자기계발의 대세를 따라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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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to Madagascar 2007 w/ 3 photograhs visiting Baobab’s Allée in Morondava

최고위 CEO들을 위한 SNS ‘출판의 달인’ 아카데미 시작!

이미 3월초부터 양재동 하이브랜드에서 일부 최고위 CEO들을 대상으로 한 영상리포트 제작방법과 SNS소통기술 강좌를 시작한 이강국피디는 “함께 평생 동행할 분들만 대상으로 강좌를 한다”고 밝히고, 현재 온라인 마케팅과 SNS 홈페이지 고객소통기술(HR Technology)을 직접 구현하기 위해서 Wine & Golf,  Tie Museum ,  Alliche 등의 사이트를 디지틀 웹캐스팅 블로그 형태로 개발해 공개했다.
 사진과 동영상과 라이브 방송이 가능한 웹매거진형태에 더 나아가 홈쇼핑용 Gallery까지 가능하게 구축하여 시연하고 있다.
 ” 요즘은 한주 한주 새로운 사업구상으로 바쁘고 많은 손님들을 만납니다. 현재  Flower printing(압화) 정아름성 화가와 프랑스 파리의 오금숙 화가, 한국의 앤디워홀이랄 수 있는 Gu Gu 갤러리까지…웹화랑을 기획하고 있다. 그의 30년 방송경험이 21세기 디지털SNS웹캐스팅 시대를 맞이하여 얼마나 또 놀랍게 진화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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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문화 미디어 소사이어티 구축 스토리 (Media Firm)
 Plan for launching “ Life & Culture Media Society

[이제는 생명을 노래하자 -최인호,1997. 5.3 한국일보]

지금은 작고한 소설가 최인호는 평소 TV를 ‘바보상자’라 여기며 잘 보지 않았지만 1997년 이강국피디의 생명시리즈 다큐멘터리 첫 프로그램인 ‘신생아병동 25시’를 시청하고 당시 한국일보 칼럼을 통해서 새로운 다큐멘터리 화법에 놀라움을 표시하며 ‘자, 이제 우리는 생명을 노래하자’는 제목의 칼럼을 쓴 바 있고, 이어지는 사할린 징용1세의 귀환( 50년 만의 귀향,1998), 이웅평의 사선에서(1998), 소년원으로 간 아이들 (1998.2), 아름다운 손짓 수화 (1998), 위기의 선택- 미혼임산부(1998), 돌산마을의 크리스마스(1997)  등의 일관되온 생명테마 다큐멘터리 연출자를 보며 ‘이강국 피디가 사는 법’ 이라는 특례의 칼럼을 남긴 바 있다.
“이강국 피디가 지금의 예리한 칼끝을 세월이 지나도 무뎌지지 않게 다듬으며 살아가길 지켜보겠다” – 최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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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회는 정체되어 있으며, 일부 정치인들의 리더쉽 혼란은 사회를 좌와 우, 있는자와 없는자, 행동하는자와 침묵하는자로 나누며 급격히 혼란해져 가고 있는데, 종편의 뉴스보도물의 가세로 일부에 지나지 않는 뉴스가 24시간으로 확대되어 재생산되는 형국입니다. 따라서 문화 예술 프로그램은 거의 사라져 버리고 오락물과 보도물…이 두 형태만 기형적으로 커가고 있습니다. 프로그램들은 그마저도 Killing time용으로 전락한 포맷이 대세를 이루고…다큐멘터리나 교양물이 외면받으면서 ‘볼륨은 끄고 자막만 봐도 되는 오락프로그램과 정치 및 가십 분석  ’ 들로 도배되어 가는 불행한 현실입니다. -이강국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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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국 PD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생명 다큐 전문가

텔레비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텔레비전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의 총체적 오염의 원인이 나는 텔레비전 때문에 비롯됐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때 텔레비전은 ‘바보상자’란 말을 들었다. 그러나 차라리 텔레비전이 바보상자였을 때는 낭만이 있었다. 지금 텔레비전은 ‘바보상자’가 아닌 괴물 ‘포켓 몬스터’이다. 텔레비전에 종사하는 사람들 모두가 최고의 지식인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텔레비전은 완전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텔레비전을 통해 유명해지려 하거나 돈을 벌려 하거나 국회의원이라도 되려 하는 홍보적 야망에 젖어 거짓 행동과 거짓말에 어릿광대처럼 춤을 추고 있다. 때문에 텔레비전은 그 막강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는 아무런 영양가가 없는 대형 설탕인 사카린으로 전락하고 있다.

텔레비전이 빚어내는 최고의 악덕은 부끄러움의 상실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출연자나 방청객들 모두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이미 한 사람도 없을 만큼 뻔뻔하고 몰염치하다. 특히 제 3의 상업 방송의 등장으로 일본 프로그램을 노골적으로 베끼면서도 죄의식을 갖거나, 일본의 노래를 그대로 모방하면서도 부끄러워하는 가수는 없다. 재미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온 프로그램을 휩쓸어 텔레비전 드라마도 더 이상 치유할 수 없는 병에 걸려 <장화홍련전>의 수준보다 밑돌고 있다. 연예인의, 연예인을 위한, 연예인에 의한 텔레비전 왕국은 전국민을 연예인화시켜 카메라를 들이대면 길 가던 행인도 춤추고 노래하고 어릿광대처럼 까분다.

고발 프로그램은 고발이라는 미명하에 오히려 타락한 성 문화의 방법을 교묘하게 가르쳐주며, 텔레비전에서 실시하는 미인 탤런트 모집은 마치 밤무대 쇼에 나오는 누드 모델들처럼 보인다. 어떻게 해서든 남보다 튀어서 유명해지려는 출연자들의 필사적인 안간힘으로 텔레비전은 살벌한 생존의 서바이벌 게임이 되었고, 어쩌다 이웃 돕기를 하는 텔레비전 방송도 구색을 맞추기 위한 억지춘향격이다.

따라서 나는 텔레비전에 출연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차피 텔레비전은 남에게 보여지는 나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하는 ‘트루먼 쇼’이다. 카메라는 출연자를 긴장시키고 거짓으로 무장된 위선의 가면으로 자신을 치장하게 만든다.

따라서 카메라는 현상(現像)을 있는 그대로 잡아내지만 그 현상은 실상(實像)이 아닌 환상(幻像)이 대부분이다. 텔레비전이 현실을 녹화하면서도 텔레비전 속에 비친 모든 현실이 현상이 아닌 가상의 사이버 공간인 까닭이 여기 있다. 텔레비전에 중독된 현대인들은 카메라의 눈으로 현실을 봄으로써 자신을 왜곡시키고 자신을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착각하는 연기된 사랑과 거짓된 인생을 살아간다.

때문에 나는 텔레비전이 필요로 하는 열 명의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프로듀서보다 한 명의 깨어있는 프로듀서를 존경한다. 어쩌다 그런 프로그램을 만나면 나는 그 프로그램을 만든 작가와 프로듀서의 이름을 외우고 그를 의인(義人)이라 생각한다.

이 처럼 뛰어난 프로듀서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은 우리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화자(話者)이므로 그가 던지는 준엄한 질문이 최면에 걸려있는 우리들을 일깨우고 각성시키기 때문이다.

이강국 프로듀서는 오늘날 텔레비전 문화에서 보기 드문 희귀 동물(?) 중 하나인 의인이다. 그의 프로그램을 보면 한결같이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재미있거나 센티멘털하거나 자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고통스럽다. 때문에 나는 그가 만든 프로그램을 보면서 몇 번이고 채널을 돌리려고도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이강국은 사실을 과장하거나 미화하거나 왜곡시키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프로그램을 보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의 프로그램을 보는 것은 아이의 탄생을 지켜보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그는 일찍이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파리 제 8대학에서 영화학 석사를 받은 영화학도이다. 그런 그가 텔레비전으로 돌아와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0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주로 다큐멘터리 쪽으로 관심을 보이며 초창기에는 <에이즈(AIDS)를 막읍시다> 라는 다큐멘터리와 <스포츠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그의 재능이 번득이기 시작한 것은 그가 1997년 <생명 시리즈>를 연출함으로써 신생아들의 병동을 취재하고 난 이후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그때 그가 만든 <신생아 병동 25시>라는 다큐멘터리를 숨죽여 보았다. 마치 현미경처럼 미세한 시선으로 아직 생명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미숙아들의 움직임들을 냉정하게 관찰한 이 프로그램을 보았을 때 나는 역설적으로 미숙아들의 생명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운 이강국의 미시적(微視的)인 시각 때문에 전율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옛 중국의 시인은 노래하였다.
“깊은 가을이 온 것은 떨어지는 오동잎 하나에서 엿볼 수 있고 머리맡에서 우는 귀뚜라미 울음소리에서 알 수가 있도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시인은 노래하였다.
“아, 가을인가. 아아, 가을인가봐. 물동에 떨어진 버들잎 보고 물 긷는 아가씨 고개 숙이지.”

그렇다. 시인들의 노래처럼 깊은 가을이 온 것은 머리맡에서 우는 귀뚜라미 울음소리와 물동에 떨어지는 버들잎 한 잎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강국의 시선은 지극히 미시적이다. 그러나 작은 움직임, 작은 떨림, 작은 숨소리를 포착해낸 그의 집요한 시선에 의해서 우리는 오히려 생명의 위대함을 발견해내게 되는 것이다.

그 런 의미에서 이강국은 미시적인 것에서 거시적(巨視的)인 방법을 발견해내는 콜롬버스적 시선을 갖고 있는 것이다. 1998년도였던가. 귀순 용사 이웅평을 주인공으로 하였던 3부작 다큐멘터리도 감동적이었고, 최근에 만든 <이 세상에서 제일 작은 아기>라는 다큐멘터리 역시 그가 일관되게 추적해온 ‘생명 시리즈’의 연작인 것이다.

4백68그램에 불과하여 쇠고기 한 근에도 미치지 못한 신생아를 1백 일 동안 취재하는 이 프로그램 역시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우는 감동적인 다큐멘터리였다. 그러나 이강국도 명심하여야 할 것이 있다.

특히 이강국의 톡특한 미시적인 시각은 항상 갈고 깎아서 그 첨예한 시각을 항상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무뎌지거나 현실에 안주해 버린다면 이강국이 추구하는 생명의 위대함도 매너리즘에 빠져서 공염불(空念佛)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4백68그램에 불과한 이 세상에서 가장 제일 작은 아이의 ‘생존 투쟁’을 성공적으로 연출한 이강국에게 남은 과제는 보다 더 넓고, 보다 더 깊고, 보다 더 높은 생명으로서의 존엄성으로 다루는 ‘작가 투쟁’인 것이다. 이제 이강국은 이 작가로서의 투쟁에서 살아남아야 할 것이다.

글 | 최인호 소설가

4 thoughts on “About

  1. Working at the highest level of photography and film, Rankin has surrounded himself with a team who inspire and push one another creatively. Over the years they have worked together on all levels of production, all genres, all over the world. Our bespoke service is first and foremost about you, what you want and how we can best put a distinct voice to your vision. Each director sees the world a little differently and brings to the table their own unique expertise.

    -citation from Rankin home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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