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쏘아올리는 답신

고 최인호 작가님 전상서

늦게서야 선배님께서 유고집 ‘눈물’을 통해 편지를 보내주신 것을 알았고, 책을 읽으면서 그것이 모두 저 자신에게 주신 피 섞인 문장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일까…밤새 낙서하듯 끄적이다 오늘이라도 뭔가, 아니 뭐든 제호로 최인호 작가님께 보내는 하늘로 띄우는 편지를 써야겠다 작심했고, 내용은 평소 제게 쓴소리하듯 들려주신 ‘초심’대로 사는 생명피디 이강국을 관조하듯 바라보며 풀어봤습니다.  결국은 저만의 독백이 될 수도 있겠지만…그러나 제가 미혼임산부의 아기들을 입양보낸지 20년이 되었고, 사할린 징용 1세분들을 모셔온지 20년이 되어오면서 이들 청년들에게 ‘할아버지의 나라, 그 육신이 묻힐 곳’으로 초대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뭔가 미디어건 방송이건 아카데미건…명패걸고 재능살려서 좌판깔듯 난생처럼 월급이 아닌 사업을 해보려고 미디어스타트업을 시작하는  2016년 입니다. 이제 제 생각을 펼칠테니 두서 없더라도 들어주세요. 

스크린샷 2016-03-06 오후 12.44.04.png

책장을 잠시 덮었습니다.

어제 선배님의 유고작 ‘눈물’을 읽고 저 역시 흐르는  눈물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성모 앞에 꿇어 앉아 애걸하셨지요.

“제발 작가로서 죽도록 성모님 도와주세요! 그렇게 도와 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몸무게 줄고 줄어 뼈만 앙상해져서 눈빛도 꺼져가고 한번 가래를 뱉기 시작하면 멈추지 못해 괴로워하며, 속에 있는 모든 것을 토하고, 절규하는 작가의 모습…그리고 그 애원을 들으며, 마치 살아있듯 꿈틀거리는  활자의 환상을 보는듯 …제 마음이 답을 합니다.

“저도 피디로 죽을 수 있을지…미리 준비하라 하시는군요.  그러나 저는 그런 존재감있는 사람이 아직은 아니예요. 좀 더 지켜봐주세요.” 

2016년 이제 신개념의 디지털 웹캐스팅 출판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선도해 나가는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예전의 별명은 생명피디!
지금은 Early Bird – Kaku PD입니다.
왜 KAKU인가…바로 제 이름 Kangkuk을 아기들이 발음하기 어려워서 카쿵에서 카쿠로 변했던 겁니다.
IMG_4022
그리고 그는 하루 20시간 중 2시간은 외국어 공부하고, 4시간은 SNS 글을 쓰고, 7개 국어를 잊지않으려 스페인어를 통해 다시 영어와 불어를 손보고 있으며, 직접 학습한 내용을 토대로 SNS인문학 아카데미를 개설하고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30초 트위터 방송을 불어 한국어 스페인어로 하고, 매일 주변의 뉴스와 화제인물을 찾아내어 영상을 유투브로 올리며,  이제는 해외동포 3.4세 모국방문과 체험을 통한 청년강국 프로젝트를 위해서 돈이 되는 회사 컨설팅 업무도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남보다 앞선 재능과 감각으로 사람들이 쉽게 스토리에 감동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만남의 기술’, ‘작업의 기술’을 세렌디피티 (Serendipity) 아트로 설명하기에 가능해졌습니다.
나이는 60을 넘겼는데 더 어려지고 더욱 사안을 간결하게 보는 힘이 생겼습니다.
이것을 뭐라 말해야 하나…고민했는데 아침에 페이스북에 ‘지식의 힘’ 명구가 도착했기에 봤더니 이런 내용입니다.
“La souffrance change les gens mais elle les rend aussi plus forts!” -Source du Savoir (지식의샘)
“고통은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그러나 또한 더욱 강하게 만들어 놓는다”
이렇듯 Just in time, on time 시기적절하게 교훈을 내려주는 격언들은 SNS의 네트워킹으로 인한 선물입니다.
뿐이겠습니까?
기억하십니까. 20년 전, MBC TV를 통해 방영된 ‘신생아병동 25시’를.  480그램으로 서울아산중앙병원 NICU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허파꽈리활성제인 서펙턴트 주사를 맞고 가녀린 숨결을 토하던 주먹만 한 아기. 구도경이 태어나서 4일 정도 지난 날…그 후로 퇴원까지 기록하여 방송한 세계최초의 극초미숙아다큐멘터리 1인 비디오저널리즘 취재물…그 주인공이 아름다운 스무살 숙녀로 변신하여  올해 대구 00대 수학과에 입학했습니다.

This slideshow requires JavaScript.

5세가 되어서 다시 피디를 만나고, 목소리만 듣고도 폴짝 뛰어 올라 가슴에 안긴 소녀.
그 소녀와 봄 나물을 캐는 모습을 방송했고, 이후로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소녀의 초등학교 입학 모습도 보도하며 그 생명의 성장을 지켜 봤던 유일한 주인공. 그녀의 Freshman 생활을 취재하러…대구로 떠날 마음에 부풀었습니다.
소녀는 숙녀가 되었고, 숙녀는 기숙사 생활을 하기에 주말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뉴스가 다큐멘터리가 되고, 이것이 삶의 다큐로 평생을 이어오는 것…그것이 제가 추구하는 ‘생명문화 미디어 소사이어티’의 가치요 윤리입니다.  그러기에 누구도 복사하거나 따라하기 힘든 미디어출판 사업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앞으로 돈은 좀 벌 수 있을까요?
평생 월급타며 살아온 피디가 스스로 자영업자처럼 에누리없이 저작권을 팔 수 있을까요?
스크린샷 2016-03-06 오후 1.30.31.png
선배님! 작가님! 드라마 상도가 MBC에 걸리던 날, 비가 나리던 날에 저는 자청해서 중계차를 타고 여의도 MBC 마당에서 건물에 영상을 투사하면서 전야제를 생중계하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그 상도의 첫 장에서 말씀하셨죠.
“광화문을 드나드는 저 많은 사람들의 성은 단 두 개이다.  하나는 이씨요 다른 하나는 해씨이니,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만 대부분 드나드는데 …”
제가 사업을 하며…이해 관계를 철저히 지켜서 우리 청소년들하고 놀 마당하나 마련하는데에 능력 한번 보이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꿈 속으로 외출 나오시더라도, 하루 전엔 알람 주세요.
자리 비운 사이에 다녀가시면 안되니까요.  끝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